지난 1월, 부산에서 229명의 피해자에게 180억 원가량을 편취한 전세사기 사건에 대한 1심 형사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로 수채의 원룸 건물을 사들였다가 채무가 감당이 안되자 새로운 건물을 같은 방식으로 사들여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으로 본인의 채무를 돌려막기하는 방식으로 피해규모를 키워온 피고인은 이번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는데요.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박주영 판사는 양형 이유에 대해 "전세사기 범행은 주택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교란하고, 서민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임대차보증금을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아 그들의 생활 기반을 뿌리채 흔드는 중대범죄라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을 통하여 이를 근절하여야 할 공익상 요청이 대단히 큰 범죄"라며, 부동산 경기 악화 등으로 인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동산경기나 이자율 등의 경제 사정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 가능한 것이므로, 임대인으로서는 임대차 만기의 대거 도래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 수익을 올리려는 개인의 경제활동 자체를 탓할 수는 없고, 이런 형태의 범죄를 촉발하는 전세 제도나 금융시스템 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이기는 하나, 자신의 탐욕이 누군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탐욕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즉시 멈춰야 한다. 여러 사정에 불구하고,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에게 다른 부동산이 있어 변제여력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유보된 약속은 참된 약속이 아니"며 "또 다른 기망일 뿐"이기에, '피해회복의 가능성만으로 형을 감경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사죄와 용서는 법원에 구하는 것이 아니"라며, 피고인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려 들었던 피고인의 안하무인한 태도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엄벌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탄원서를 여러 건 인용하며 "사기는 피해자의 재산을 가져감과 동시에,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시간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나쁜 범죄"라며 '사기는 피해자의 자장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래는 판결문에 인용된 다수의 탄원서 내용 중 일부입니다.
"결혼 상견례 하루 전날 파혼당하고, 그 스트레스로 체중이 빠지고 백내장까지 앓고 있다.", "도박이나 주식 투자를 하다 돈을 잃은 것도 아니고, 그저 살 곳이 필요하여 대출을 받아 전세계약을 했던 것뿐인데", "약을 안 먹으면 일을 할 수 없다.", "단전이 되고, 수도, 인터넷, 가스, 청소업체 대금 모두 미납되었는데도 새로 입주민을 들였다. 특별법마저 피해자들을 구제하지 못한다. (건물 관리가 되지 않아) 합선되어 화재까지 날 뻔했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다.", "연락이 두절되고 내용증명도 반송되었다.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이 충격을 받으실까 연락드리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제 호실은 교통유발 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아 압류까지 되었다.", "만기 전 연락을 회피하고 겁박하고 기망했다. 미래와 일상이 무너졌다.", "수사 중 건물 관리는 무슨수를 써서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안 했다.", "내 전 재산이다. 불안함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높은 금리의 대출금 상환도 힘들다.", "한국금융주택공사 상담사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전세사기 상담을 할 때마다 힘들다.", "피해자의 딸이다. 전세금은 90세 노모가 평생 모은 돈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 하신다.", "칼만 안 들었을 뿐 강도 살인과 다를 게 없는 게 사기다. 저는 평생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잊을 수도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개인과 가족, 주변의 삶이 파괴되었다.", "타지로 전입이 어려워, 사랑하는 사람과 주말부부로 지내기로 했다.", "(피해자가) 곁에서 볼 때 위험해 보일 정도의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판결문에 인용된 탄원서 중, "법은 당연히 피해자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해자도 원망스럽지만 법이 더 원망스럽다."라는 문장이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법을 피해자의 편에 세우고 정의가 실현되는 판결이 차곡차곡 쌓여갈 수 있도록 세입자114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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